'시카고 시대' 연 메켈레, 명쾌하고 장엄한 첫걸음

입력 2024-04-08 19:03   수정 2024-04-09 00:57


미국 명문 악단인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CSO)의 대표 제프 알렉산더는 지난 2일, 주말 공연을 위한 첫 번째 리허설에 앞서 포디움에 올라섰다. 리카르도 무티 재임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포디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지휘자뿐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표는 단원과 스태프 그리고 이사회에서 다섯 명씩 선발된 음악감독선정위원회가 4년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음악감독을 선임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11번째 CSO 음악감독으로 클라우스 메켈레를 소개했다. 약 1분간 이어진 단원들의 박수를 받은 메켈레의 인사는 간결했다. “동료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큰 영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할 일들에 대해 무척 기대가 큽니다. 쇼스타코비치 10번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반세기 동안 CSO는 리카르도 무티,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 게오르그 솔티와 같은 전설적인 지휘자의 전유물이었다. 20대 젊은 지휘자가 133년 전통 악단의 음악감독이 된다는 뉴스는 사람들의 평가가 첨예하게 갈릴 만큼 파격이었다. 그러나 악단 내 분위기는 달랐다. 이번 공연까지 메켈레와 세 차례 합을 맞춘 CSO 단원들의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그는 리허설을 하는 동안 문제를 파악하고 핵심을 관통하는 간결한 해법을 제시했다. 말하는 속도가 빠르고, 하나를 해결하면 그다음으로 곧바로 넘어갔다. 포디움 위에서 방향을 고민하지 않았고, 리허설은 늘어지지 않았다. 단원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긴장과 이완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곡이다. 이런 작품일수록 지휘자가 중요 지점을 얼마나 잘 짚어내느냐에 따라 연주자의 운신 폭이 정해진다. 메켈레의 지휘는 감각적이다. 그리고 정교함과 명쾌함을 갖췄다. 그는 공연 내내 악보를 소품처럼 뒀을 뿐 단원들과의 접촉을 놓치지 않았다. 1시간에 이르는 교향곡은 물론 전체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마치 매뉴얼도 없이 명품 시계를 조립하듯 능숙하게 단원들을 컨트롤하다가도 어느새 탁 트인 벌판으로 몰아 완전한 해방을 선사했다.

작년 10월 카네기홀에서 리카르도 무티 지휘로 경험한 강직하고 완고한 악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CSO의 홈인 심포니센터는 음향이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받쳐주지 못한다. 현악기 독주자가 출연할 경우 쉽지 않다. 솔 가베타는 자신만의 소리를 가진 첼리스트로 정평이 난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2층 발코니에서는 악단 사운드에 가려진 부분이 많았다.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 1번은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날을 세우고 겨루는 곡이다. 악단이 솔리스트의 ‘눈치’를 보는 순간 곡의 정체성에 균열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의 잘못을 묻는 대신, 장소의 태생적 한계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협연 파트는 원래 세기의 커플로 잠시 화제를 모았던 메켈레-유자 왕이 한 무대에 서기로 돼 있다가 바뀌었다.

현대 오케스트라의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는 오늘을 담은 작품을 위촉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탄생한 작품은 반복된 연주를 통해 생명력을 이어간다. 지속적으로 연주하는 곡이 되지 않는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또 다른 곡에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이날 콘서트의 첫 곡은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핀란드 작곡가 사울리 지노브예프의 ‘배터리아(Batteria)’였다. 그는 시벨리우스아카데미와 독일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조성’이라는 틀 안에서 전통적인 문법에 따라 쓰인 이 곡은 특수한 악기도 없고, 특별한 연주 기법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무난한 타입의 작품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메켈레는 이 작품의 극성팬이다. 그래서 뮌헨과 도쿄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자신의 첫 미국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지명 연주까지 이 작품을 선택했다. 작곡가에게도 이 곡에도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일 뉴스가 발표된 이후 첫 공연인 4일. 시카고 청중은 준비를 마친 CSO 단원들 앞으로 등장한 새로운 음악감독, 메켈레를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포디움에 선 메켈레는 청중에게 인사한 후 단원들을 향해 바로 지휘봉을 들었다. 그는 2027년 가을부터 정식으로 CSO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다. 메켈레 시대가 열렸다.

시카고=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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